화학의 로망 by Piano

** 수다성 글입니다. ^^;.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갑자기 왜 뜬금없는 화학 이야기냐면. 지금 아마도 수요일, 아무리 늦어도 목요일 오전 정도까지는 완성해야 하는 (영어-_-)논문이 있기 때문이다. -___- 11월 둘째주에 가야 할 학회 때문에 논문을 써야 하는데. 일단 데이터셋은 대강 있고. 이걸 어떻게 짜서 글을 써야하나 고민하며 퇴근길을 걷다가 생각이 삼천포로 빠지기 시작해서 ... 쿨럭;;. 

지금 현재 회사에서 하는 일은 전문용어-___-로 Heterojunction solar cell, 그러니까 이종접합 태양전지다. 이종접합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것을 붙여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결정질 실리콘에 비정질 실리콘을 올려 만드는 이종접합에 관한 것이다. 어쨌거나 태양전지는 '전기'가 생겨야 되기 때문에 전기를 실어나를 수 있는 전자나 정공(hole)이 장애물에 잡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이종접합은 서로 다른 두 물질이 만나기 때문에 그 사이에 전자나 정공을 잡아먹는 (어흥!) 곳들이 많이 존재하게 되고, 따라서 이걸 어떻게 줄이느냐 하는 게 최대의 관건이다. 지금 써야 하는 논문도 그 주제에 가깝다. 비정질 실리콘이 그 자체로 interfacial state, 그러니까 전자나 정공의 trap site (혹은 recombination site)를 커버해 주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산요처럼 고효율 전지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만들려고. 으하하하.. OTL) 아무튼 그래서 그 '현상'을 이해하는 쪽에 관심이 있고, interfacial state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커버 (Passivation이라고 한다)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실험을 해 온 것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다. 실제 실험을 복잡하게 한 건 아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박막 증착 후 열처리해서 얘가 잘 커버하고있나 못하고 있나 를 보는 정도의 실험이다. 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일테다.

데이터를 해석하기 위해서 요모조모 들여다보면서 고민하다 보면, 점점 생각은 작고 작고 작은 곳을 향하게 된다. 전자나 정공이 왔다갔다 하려면, 이 passivation 성능이 이렇게 차이가 나려면 그 사이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실리콘 원자와 실리콘 원자가 만나는 곳에, 혹은 그 화학결합이 끊어지는 곳에, 그 한 곳 한 곳이 어떤 상태인 걸까. 빛이 쨍 하고 쪼여서 원자에 매여 있던 전자가 톡 하고 튀어나오면, 전자는 어떤 험난한 여정(!)을 거쳐 전극을 만날 것인가 (!) 같은 동화적 상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전자의 여정에 놓인 온갖 함정과 난관들을 줄여주는 일인 셈이다. 

내가 화학과 출신이구나, 화학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것이 실감날 때가 이럴 때다. 규칙적으로 놓여진 실리콘 기판과, 약간은 무질서해보일 비정질 실리콘 사이를 헤엄치는 전자(!)가 된 상상을 할 때랄까. (왠지 무슨 웜홀같은 터널, 혹은 복잡한 그물(엄밀한 의미에서 그물은 아니지만) 사이를 마구 헤쳐가는 동영상의 주인공이 된 느낌?) 원자와 원자가 만나 화학결합을 이루고, 그것들이 우글우글 모여서 또 손을 잡고 잡고 잡아서 고체가 되는 등등의 상상을 하다가, 좀더 작은 세계로 가서 사과만한 원자핵에 축구장만한 전자구름을 상상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 주기율표를 보면서 어쩜 이럴수가 있을까 신기해하면서 하나 하나 짚어보는 것, 수소원자로부터 전자, 양성자(및 중성자) 갯수를 늘려가며 상상해보는 것, 그러다 유기분자의 구조를 생각하다, 예전에 유기금속분자 합성하던 생각을 하다가, 탄소나노튜브를 또 상상하면서 전자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을 또 상상하다가.. 이런 저런 상상 속에 폭 빠져서 헤매다 정신을 차려보면, 써야 할 논문은 눈 앞에 있달까.. OTL

논문의 내용도 어찌 보면 관련이 있는 내용일텐데. 나노 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도 비슷한 연유일텐데. 고체와 같은 '수많은' 원자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시스템에서, 원자 하나에 일어나는 일은 어떤 것일까 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어찌 보면 사회과학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다르지만 '한국'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넣어놓고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면, 각각의 개인은 묻히고 집단의 특성이 나타나잖아. 분명히 원자 하나 하나도 놓여 있는 상태가 다를 테고, 어떤 특정 상황에서 선택이 주어질 때 어느 쪽으로 결합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 역시 개개의 현상이되 전체로 만들어 놓고 보면 하나 하나는 보이지 않고 통계적인 현상만 보인다. 현재의 분석 기술들은 결국 그 '통계의 결과'를 보는 것일테고. 물론 single molecule을 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언젠가는 잘 되겠지 막연히 생각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집단 속의' 원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집단 속의 원자에 대해서 알기 어렵다면, 집단의 전체 수를 줄여서 큰 규모의 집단과 다른 점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집단 속의 원자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나노'를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 이래 저래 여쭤보기도 하고 찾아보기도 하니 결코 만만한 것도 아닌데다 -_- 실은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화학에 대한 모독-_-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궁금하다구. 진짜로. 또 상상한다. 단결정 실리콘 위에 비정질 실리콘이 있고, 수소가 중간중간 쏙쏙 들어가있고. 그 사이에서 전자는, 어떤 상태일까. 혹은 실리콘 사이에 형성된 결합은 어떤 에너지로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결국은 뭐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는 별로 나오지 않고 (OTL) 나는 딴생각만 주구장창.. ㅠㅠㅠ 

화학이 가지는 끝장매력이라면, '화학결합'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주기율표의 원소들이 서로 서로 손을 잡고 다양한 물질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상상하면, 지구의 다양성은 결국 화학결합에서 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리에서 어떤 근본적인 법칙을 만들려고 노력한다면, 화학은 결국 그 '다양성'으로 발산하는 것 아닐지. 이래 저래 그래서 오지랖이 엄청 넓은 분야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래 화학 한다면서 전자회사에서 일하는 것이기도 할 테고, 노벨 화학상은 생명 쪽 분야로 가기도 하는 것일테고 ( --) .. 그 오지랖의 한쪽 구석에서 나는 오늘도 다시 또 화학을 꿈꾼다. 그래. 화학은 나에겐 로망인 모양이다.

........ 논문은 내일 밤새 쓰지 뭐 ㅠㅠ.. 자, 회사에서 밤샘 가는거다! (이카고 OTL)




덧글

  • leopord 2009/10/27 02:07 # 답글

    꿈이 모락모락 피어나는게 보이는 것 같아요. 화학에 대한 파슨심이 물씬물씬.ㅎ;;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얘기기도 하고. 묘사가 너무 근사해서 나도 모르게 덧글 달아요.

    덧글 단 김에 링크 신고해요- (사실 링크는 몇 주 전에 했지만;;)
  • Piano 2009/10/31 18:22 #

    ㅎㅎ 간만에 체크해봤더니 링크가 늘었길래 누군가- 했더니 leopord님이셨군요 ^^ 히히.
    원래 매력이란 건 다 제눈에 콩깍지 .. (응?) ㅎㅎ 아무튼 링크 덧글 감사감사. ^^
  • 2009/10/27 03: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Piano 2009/10/31 18:23 #

    ...... 아니 뭐가 무서워요? +_+ (전혀 모르겠다는 천진난만(!)한 눈빛)
  • contrail 2009/10/27 08:48 # 삭제 답글

    Chemist 만세!!! ^^/
    (자자~ 이제 박사과정 고고씽 하셔야죠~ (응?))
  • Piano 2009/10/31 18:24 #

    .... ㅠㅠㅠㅠㅠ 뭐 conference proceeding 급의 논문 쓰면서 이따위로 스트레스 받는 걸 보면 박사 가는 건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OTL..
  • aleph 2009/10/27 10:16 # 삭제 답글

    화학보다는 화학약이 더 좋.......
  • Piano 2009/10/31 18:25 #

    ㅎㅎㅎㅎ 어흥!
  • 블리츠 2009/10/27 12:12 # 답글

    재미있는 것 하시네요. 긴 글 잘 읽었어요 ㅎㅎ

    음 이종접합에서 전자들이 전달되지 않고 표면에서 그렇게 많이 먹히나요?

    그럼 효율이 많이 떨어질텐데 ;ㅁ; 그게 어느정도 인지 궁금하네요 @.@
  • Piano 2009/10/31 18:27 #

    응 이종접합에서 바틀넥이 보통 그 표면임.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 표면을 passivation 해주느냐에 따라 효율이 많이 달라지는데.. 그런데 정확하게 표면성분에 의해서만 손실되는 효율을 계산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 a-Si 같은 경우에는 표면 passivation과 junction 형성을 동시에 하니까. doping 및 막 성질에 따라서도 달라질테고..
  • 태풍9호 2009/10/27 15:22 # 답글

    수다성 글이라고 되어 있어 낼름 들어왔는데,

    지금 현재 회사에서 하는 일은 전문용어-___-로 Heterojunction solar cell,...

    이하 너무 난해하군요. 허으~
  • Piano 2009/10/31 18:28 #

    ㅎㅎㅎ.. 저는 뭐 경영이나 회계 그 쪽 얘기 들으면 @_@ 난해하다 싶은걸요.
  • ~_~ 2009/10/27 21:56 # 삭제 답글

    좀더 작은 세계로 가보는거야 쿼크의 핵력의 비밀과 약한 상호작용의 원천이 궁금해지지 않아? 결국 물질의 성질을 바꾸는것은 원자가 내포한 에너지와 가지고 있는 전자 개수라구.. (뭔소리야..)
  • Piano 2009/10/31 18:30 #

    물질의 최소단위는 원자라기보단 '분자'임. (메탈 같은 경우 제외하고.) ㅋㅋㅋㅋㅋ 물질의 성질은 원자의에너지와 전자 갯수에 의해서도 달라지지만 원자 사이의 결합(분자)에 따라 달라지는 거임. 익명으로 달지 말고 ㅋㅋㅋ 익명으로 달아도 다 알아보잖아요 ㅋㅋㅋㅋ 이긍
  • 사이동생 2009/10/28 11:01 # 답글

    아아....다 이해하고 있......털썩.....
    junction에서 나타나는 PV효과들은 recombination이 꽤 심하다고 들었는데....뭐 와트당 0.2mA간신히 넘기는 저희랑은 차원이 다른이야기...(먼산....)

    힘내세요. 원래 이쪽이 꿈 하나로 뛰어드는 세계....
  • Piano 2009/10/31 18:32 #

    ㅎㅎ. 그래도 산요가 한 거 보면 recombination을 잘 조절할 수는 있는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23%짜리 만들고 하겠지. ㅎㅎ 우리도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중.
  • jewel 2009/10/29 14:37 # 답글

    넘 오래 쉬었나보다. 이젠 못알아듣겠음 T-T
  • Piano 2009/10/31 18:33 #

    ㅎㅎㅎ 저도 이쪽 일 하기 전엔 못알아먹었을 이야기가 반인데요 뭐.. ㅋ
  • highseek 2009/11/01 22:29 # 답글

    와.. 정말 화학에 대한 마음이 물씬 풍겨나는군요.

    ...무슨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 Piano 2009/11/04 19:31 #

    ..... 뭐, ... 마음만 알아주셔도 다행입니다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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