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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만났던 후배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찍어두었던 물건 사진.
꼭 들고 다니게 되는 물건들에 대한 생각. 
신사동 가로수길 일리 에스프레사멘테.


목요일,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이 무겁단 생각에 들고 다니던 조그만 카드지갑 같은 것이었다. 평소에 쓰던 신용카드와 운전면허증, 현금영수증 카드, 해피포인트 카드 정도 그리고 현금 만 원 정도가 들어 있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난 건 목요일에 받았던 명함들. 그리고 나서, 돈이나 카드들보다는, 그 지갑 자체. 지갑에 숨어있던 기억들 같은 것. 가볍기도 하고 은근 수납공간도 많고, 열쇠고리용 고리를 손가락에 끼고 다니면 들고 다니기도 편해서 잘 쓰고 있던 녀석이었다. 어디 여행을 갈때면 거추장스런 큰 지갑은 가방 안에 깊숙히 넣어두고 꼭 필요한 것들만 넣어서 들고 다니던 녀석. 2007년의 첫 여름휴가때에도, 2008년 미국에 갔을 때에도. 어느 한 기간의 기억을 함께 하는 물건이 사라지는 일은, 그 안의 돈이나 카드가 사라지는 것보다 배는 속상하다. 

카드지갑을 잃어버리고선 커다란 지갑을 들고 다닌지 며칠 되지 않았다. 오늘 상암동 홈플러스에 갔다가, 화장실에 그 지갑을 놓고 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지갑이 없다는 걸 깨닫고서 다시 화장실로 달려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기껏해야 십 분 내외였지만, 달려가면서도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다. 늦은 시간 치고도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분명히 누군가 들어가지 않았을리는 없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보니 다행히 지갑은 그 자리에 있었다. 안심하고 지갑을 든 순간, 지갑이 다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지, 하고 확인해보니. 다른 것들은 다 그 자리에 있는데 들어있던 현금만 쏙 빠져있다. 삼만 오천원 정도였던가. 

묘하게 기분이 씁쓸했다. 잃어버린 돈에 대해서는 오히려 무감각했다. 이상하게도 갈수록 '돈'에 대한 감각은 별로 없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돈이면 누구 말마따나 게임을 하나 살 수도 있고, .. 평소에 생각하던 다른 곳에 기부할 수도 있는 돈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돈만 쏙 빼서 가져간 누군가는, 자기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도 들어 씁쓸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지갑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큼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 지갑보다, 지갑 안에 있었던 것들이 다 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은행 보안카드처럼 잃어버리면 난감한 것들;;도 있지만, .. 추억의 사진들, 여행 다녀오면서 탔던 열차표 같은 것들. 어찌 보면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기도 하지만 기억이 묻어 있어서 소중한 것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들은 그 자리에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었다. 그냥 지갑에 넣어두고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돌아오는 길에 잠시 꺼내보았다. 매번 꺼내보며 즐거워했던 기억과 함께 다시 슬몃 웃음. 에잇, 다음부턴 좀 잘 챙겨서 다녀야지 뭐. 건망증 심한 아가씨 버릇이 어디 가겠냐만은 말이다. 



덧글

  • 태풍9호 2009/08/16 16:52 # 답글

    흠, 저도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이틀 사이에 지갑을 2번 연달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목욜에는 제일 멀쩡해 뵈던데(그럼 지가 취한 것이었나요?) 지갑과 함께 기억의 일부도
    날아갔다니 참...

    하여간 다음날은 저도 상태가 메롱이더군요.

    참, 링크 추가했습니다.
  • Piano 2009/08/17 00:21 #

    네에.. 제가 아무리 취해도 얼굴엔 거의 티가 안나는 타입이어서요.
    ㅠㅠㅠㅠㅠㅠ 기억이 안나니 뭐 알 수가 있어야죠 ㅠㅠㅠㅠㅠ 제가 실례를 하지는 않았는지.. ㅠㅠ
    ... 그러고보니 쭌님이랑 박지웅 변호사님은 괜찮으셨는지.. 새삼스레 궁금해지네요 ;

  • 태풍9호 2009/08/17 14:09 # 답글

    실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답니다.
    서로 초면이라 그런지 다들 너무 멀쩡해 보이더군요.
    자그니님이 무척 피곤해 하던 모습만 기억에 남네요.
    다음날 전화해 보니 박지웅 변호사는 엄청 피곤해 하더라고요. 뭐, 당연한 현상이죠. ㅎㅎㅎ
  • Piano 2009/08/17 17:23 #

    아핫. 그러셨군요. 저만 메롱이었던 건 아니군요. 실수한 것도 없는 듯 하여 조끔은 다행이구요 ㅋ
    명함 없어지니 연락처도 없어서 연락도 못해보고.. ㅠ
  • 사이동생 2009/08/17 21:57 # 답글

    얼마나 드신겁니까.........쿨럭쿨럭. 과음은 몸에는 안좋다구요.
  • Piano 2009/08/17 22:20 #

    과음이 몸에 좋지 않죠. 저도 아는데.. 달리기 시작하면 주체를 잘 못하네요. ; 아하핫.
    얼마나 마셨는진 잘 모르겠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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