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어떤 세상에 살고 있니? - 걸리버 여행기 완역판 by Piano


걸리버 여행기 - 8점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신현철 옮김/문학수첩북앳북스


이 책, 알고보니 무시무시한 책이었다. 깔깔 웃다 보면 등골이 서늘했다. 소인국과 대인국 이야기도 흔히 알고 있는 스토리 뒤에 숨어있는 풍자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뒷 두 부분은 앞 두 부분이 정말로 '동화스럽게' 보일 정도로 임팩트가 막강했다. 한동안 계속 생각이 났다. 정말,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사람 사는 세상의 현상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렇게 앞 두 부분만 떼어다가 그따위로 윤색;해서 동화로 낼 수 있는 레벨의 책이 아니었다, 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친다.


1. Overview

지구의 역사에 '사람'은 어떤 의미인가 가끔 생각한다. 왜 그 지구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하루로 본다면 인류의 등장은 마지막 1분이라고. 마지막 1분동안 사람들은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살아왔나, 생각해보면 참 끔찍하다는 거다. 물론 수많은 개인이, 그 흐름에 대한 인식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갔을 테지만 그 동안에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죽이고 배신하고 하면서 살아온 거다. 참 신기하지.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대체로 아, 사람들은 '선하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단체로 모여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이상해지는 기분 같은 것 말이다. 선한 의도가 모인다고 해서 모두 선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모여서' 시작된 일들 혹은 권력이나 이득이 연관된 일에 있어서는 지극히 '어리석고' '악한'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있으니까. 그 부분이 '생각'의 시작이다. 사람은 과연 선한가.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찌 보면 '비상식적인' 일들은 대체 왜 그럴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았던 일들 같은 건?. 과연 사람들은 합리적인가?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강하고, 자신보다 강한 사람 앞에선 약하지 않았나? 합리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합리적이지 않을 때는? 

조나단 스위프트씨는,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날카로운 눈을 가졌던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한다. 300년 전의 세상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은, 세기가 바뀐 2009년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300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지만 역시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 '고전'이라는 말이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큰 의미를 주는 저작 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진정한 고전 일거다. 


2. 권력의 세계, '크기'와 '힘' - 1부 소인국, 2부 대인국

동화적 상상력 아래 가려진 인간의 잔인함. 아니 어쩌면 인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그럴지 모르겠다. 자신보다 작거나, 자신보다 약한 자에 대한 잔인함 같은 것 말이다. 더불어 자신이 '약자'의 위치가 되었을 때, 커다랗고 힘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남아야 할 때. 어떤 상황에서 '적응'하는 건, 어찌보면 주변과 '시선'을 맞추는 일이기도 한 듯 싶다. 자기 자신이 주변에 비해 크건, 자기 자신이 주변에 비해 작건 간에, 자기 자신을 보는 것보다는 '주변'을 보게 되기 때문 아닐까. 여행에서 돌아온 걸리버씨의 언급을 보다가 생각했다.

(쓰다보니 생각나는 그림. 억수씨 네이버블로그에서 퍼옴. 출처 : http://blog.naver.com/inaindesu/30066627914)


소인국과 대인국은 워낙에 유명한 이야기라서 그닥 이야기할 부분이 많지 않지만.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자면 소인국에서의 '정쟁' 얘기와 소인국에서 불 끈 이야기인듯. 글쎄, 얼마나 인식을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자기 자신은 거대한 사람인 '소인국'에서, 사람들이 서로 전쟁을 하고 싸우는 것을 보는 기분은 어찌 보면 '귀여웠'-_-을 것 같다. 그것도 싸우는 이유가, 달걀을 뾰족한 쪽을 깨서 먹을 것인가 넓적한 쪽을 먼저 먹을 것인가 하는 거였단 얘기는 참..;. 그러고보니 진짜 1700년대쯤에, 그런 말도 안되는 일로 싸움이 일어났다고 들었던 것도 같고..  그렇지만 별 것 아니다, 라고 생각하기엔 지금 역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로 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과연 '별 것'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기는 한지. 이건 3부와도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3.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 

나름 엔지니어로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가장 뜨끔한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이 나라가 하늘을 떠다니는지 커다란 자석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으나 따져보진 않았다;;. 이 부분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하늘을 떠다니는 나라'에 있는 학교들에 대한 것이다. 언어를 연구하는 학교, 정치를 연구하는 학교, 기타 기술을 연구하는 학교 등등인데. 기술 내지는 학문에 대한 맹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싶은데. 특히 아카데미의 첫 부분 - 오이에서 태양광선을 추출한다던지, 대변을 원래의 음식으로 되돌리는-_- 연구를 하는 사람 등-은 중세의 '연금술'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이야 당연히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 그 시절에는 정말 맞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인간이 경험을 통해 쌓아온 기술이 있고,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생각 혹은 연구를 통해 만들어내는 이론이 있을 때, 그 둘 중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경험'은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중요성 혹은 귀함을 잘 모르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극도로 믿기 시작하면, 경험과 현실에서 괴리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정말 뜬금없고 쓸데 없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현실을, 본질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 듯 싶은데,  그렇다면 현재는 어떨까. 지금의 연구들은 현실을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을까. .. .. 지금 옳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정말 옳은 것일까. 수많은 학문들이 다루는 논제는 사람들을 정말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가. 


3부의 7, 8장은 '유령'을 부르는 내용. 과거의 인물들을 소환해서 이야기를 듣는 내용들이 나온다. .. 브루투스, 시저,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인물들부터 귀족들, 왕들로 이어져서 나중에는 중류층 농민까지. 처음엔 흥미있게 읽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뭐랄까. 인간 사회와 역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다. 걸리버씨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이 타락했다고 보았지만, 내가 보기엔 .. 인간사에는 같은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과연 희망이 있기는 있는 걸까. 

10장에서의 '스트럴드블럭' 이야기 역시 굉장히 흥미로운데. 스트럴드블럭은 '죽지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는 않은 사람.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는 생을 꿈꾸지만, .. '늙음'에 대해 생각한다면 '죽지 않는' 것은 더 어려운 것일테니까.. 


4. 말들의 나라 - 휴이넘 기행

3부가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충격이 컸다고 한다면, 4부는 정말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할 정도의 부분이었다. 처음에 걸리버 여행기가 출판되었을 때 삭제되었다는 얘기가 얼핏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읽으면서 살짝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끼고선, 나도 어쩔 수 없이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다' 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싶어 씁쓸했다. 정말로 우월한 존재일까. 물론 제시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다. 아무 이유 없이 당연하다고 여겨 왔던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어떤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그 의도와 달리 사람들에 의해 왜곡되는 것을 끊임없이 보아왔으면서, 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라든지. .. 하아, 뭐랄까 굉장히 답답한데.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과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사는 세상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스위프트씨는 사람들이 하찮기 생각하는 '말'이란 동물을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로 설정하고, 인간을 '야후'라는 이름의 야만적인 동물로 설정해서 권위를 역전시킨다. ... 왠지 그럴듯하다. 사람이 '사람답게' 라고 말하고 그 단어에 대해 생각하는 이미지는, 실제로 현실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는 괴리가 있다. 그건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5. ... 다른 얘기들. 

물론 300년 전 이야기니까, 달라진 부분도 많고.. 특히 휴이넘의 나라에서 나오는 '이상적인' 나라의 모습에서도 시대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계급제 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라든지. 시대가 다르니까,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부분.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통찰이다. 이 책 덕분에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고, 앞으로도 종종 곰곰이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내가 개인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부터, 내가 '살기'위해 하는 일들 - 지금 예를 들자면 R&D? - 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조금 더 크게는 사회 내의 역할과 정치성에 대해서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되 회의적이어지고 싶지는 않다. 쩝, 인간들이 다 그런거지, 라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건 무책임한 짓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오후다. 



덧글

  • highseek 2009/08/15 17:01 # 답글

    꽤나 의미심장한 소설이죠. 이거..
  • Piano 2009/08/15 17:24 #

    의미심장한 정도가 아니던데요;.
  • 태풍9호 2009/08/16 16:53 # 답글

    걸리버 여행기랑 쥘 베른 책들은 참 신기하죠.
    그 옛날에 어찌 그리~
  • Piano 2009/08/17 00:16 #

    어쩌면 사람 사는 건 비슷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요. 시간 차이가 얼마이건 간에 말이지요.
    쥘 베른 책은 읽어본 적이 별로 없는데, 한 번 같이 읽어봐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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