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 김성일, '땅끝에서 오다', 장필순&함춘호 '그는 항상 내 안에 있네',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by Piano

각 개인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는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 중 하나이다. 큰 맥락에서 보면 여러 가지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종교에 대한 문제도, 신념에 대한 문제도, 혹은 의사소통의 문제 역시 크게 보면 각 개인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종교나 신념은 각 개인이 사회와 세상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프레임' 혹은 '안경'이다. 의사소통의 문제는 결국 서로 다른 안경을 쓰고 같은 현상을 바라보다 보니, 그 차이가 누적되어 발생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글을 읽든, 혹은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노래를 듣건 간에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혹은 세상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그 인식에 기반하여 어떤 삶을 영위해 왔는가, 에 대해 궁금해하고 상상하는 버릇이 있다. 


1. 땅끝에서 오다 :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때였던 듯 하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있는 책이면 모조리 탐독하던 시절이었다. 어느날 집에서 기독교 계열의 소설책을 발견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소설편향적인 글읽기는 여전했고, 그래서 읽었다. 책의 제목은 '땅끝에서 오다'였던가 '땅끝으로 가다' 였던가. 두 권 다 읽었으니 두 권 중 한 권일텐데, 아마도 '땅끝에서 오다' 였던듯.

땅끝에서 오다 - 8점
김성일 지음/홍성사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기에도 (책의 의도 내지는 결론과는 상관 없이) 멋진 책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난 그 책을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무언가 아찔하던 느낌이 남아있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 한 부분.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 사도요한을 검거하기 위해 카타콤에 들어갔던 그 당시 잘 나가던 관리가 그 안에서 미로에 갇히고 만다. 그 안에서 탈진하여 쓰러진 그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이었던가, 상상하는 것이었던가. 아무튼 미로에 갇히고 희망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 혼미해진 정신 속에서 그 사람이 깨닫게 되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세상은 내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어차피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다.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 '나'의 '세상'이다. 내가 죽는다는 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종말이다. 


그 소설이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어떤 식의 결말을 내는가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부분 자체가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열두살짜리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벅찬 내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충격을 받고, 며칠을 그 내용을 가지고 끙끙대며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삶은 무엇인가 따위의, 사춘기적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던 것 같고. 결국 그것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된 이유였고, 그 이후로 쭉 고민을 해오게 되었던 원인이기도 하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고, 결국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내면서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는가 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래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가끔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도,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도, 문득 궁금해진다. 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보고 싶다, 저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 어떻게 다를까. 




2. '더 리더' : 역사, 시대 그리고 개인의 삶 - 무엇이 '인식'을 결정할까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 8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이레



논쟁적인 텍스트다. 어디에 코드를 맞추어 해석해도 흥미로울 것 같다. 대강 손으로 꼽아보아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네다섯가지가 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소설의 허리 쯤을 구성하는 '재판' 부분이었다. 재판을 제3자의 입장 쯤에서 바라보고 있는 미하엘도, 그 논란의 중심에서 사건의 당사자로 피고인석에 앉은 한나도. '시대'를 살아냈던, 혹은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가 충돌한다. 재판장에게 묻는 한나의 질문이 그 출발점이자 결론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 질문의 함의가, 결국은 상대방에게 당신은 이 세상을 혹은 그 시대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리고 그 인식에 따라 어떻게 행동했겠는지 에 대한 질문일테니까. 

시대의 상처는 폭력적이다.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상처를 경험하고 대처한다. 어떤 식이든, 자신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상처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폭력적이고, 각 개인이 그 상처를 극복하는, 혹은 그 상처로부터 도망가는 방식의 차이로부터 갈등이 발생해서 또 폭력적이다. 시간이 흘러도 역시 말끔하게 씻어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미하엘이 한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그 마지막 부분, '상처를 씻어내기 어렵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 

열 다섯살 시절의 경험에 결정되어버린 미하엘의 세상 인식도, 글을 읽고 쓸 수 없다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은 한나의 세상 인식도 '사람의 경험' 혹은 어떤 조건이 세상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에 대해 방향을 제시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각 개인의 인식은 각자의 경험에서부터 비롯한다. 그렇지만 '시대적인' 상처가 영향을 줄 때, 그 공통의 상처가 개개인에게 어떻게 다르게 작용할 것인가, 혹은 그 '공통의 상처'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받아들여지는가가 각 개인의 인식 및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부분.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3. '그는 항상 내 안에 있네' - 노래로 표현하는 삶의 관점


좋아하는 가수를 꼽아볼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두 사람 중 한 분이 장필순씨다. 그런 분이 새 앨범을 냈는데, 구매를 망설였다. CCM이라는 이유였다. 중고등학교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그 당시 김명식씨나 소리엘, 옹기장이 같은 팀들의 노래를 열심히 찾아들었던 기억과 맞물렸다. 그 때엔 무척 재밌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기에 썩 유쾌하지는 않다. 종교에 대한 생각이 일단 바뀌었기 때문에, 그 때의 경험을 평가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으므로. 그 기억으로 'CCM'에 대해 껄끄러운 기분을 가지고 있다. 빅마마의 앨범에 종종 등장하는 CCM같은 (아니 내가 보기엔 앨범만 가요 앨범에 실렸을 뿐이지 CCM이 분명한) 곡들을 껄끄러워하며 피하게 되는 것 역시. 

종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도 역시 인식의 한 종류다. 종교와 신념은 '믿음'이기 때문에 맹목적이기 쉽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각 개인에게 건드릴 수 없는, 가장 기본적 가치가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종교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더이상은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 사람이 나에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부분에서 이 앨범은, 처음에 CCM이란 생각 때문에 껄끄러웠던 기분을 조금 무마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여전히 어딘가 마음을 건드리는 목소리나 연주는 차치하고라도, 그 가사를 만든 사람의 인생에 대해 상상해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부분을 고민했는지 에 대한, 어찌 보면 단순한 것 같지만 오히려 평범해서 더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 물론 정말 CCM같은 가사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내가 과거에 그 안에 있었기에 이 부분이 어떤 의미이고 이 노래를 부를 때 저 사람이 어떤 기분일까를 유추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런 표현 정말 좀 그렇지만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다. 내가 '종교'에 대해서 그 부분을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무언가 민망하고 껄끄럽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분이지만, 그 외의 부분, 그러니까 인생에 대한 부분은 추상적인 '인식'을 벗어나서, 한 사람이 세상을 보게 되는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이야기가 담긴 가사를 들려준다. 그 가사가 실려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와 거부할 수 없는 연주. 대중음악웹진 '보다'에 실린 리뷰처럼, 어찌 보면 '거장급'의 두 분이 오랜만에 만들어낸 사운드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이 사람들이구나, 그래서 최소한 이만큼의 퀄리티는 보장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일면 들기도 하는 음악. 



모 님의 초대로 무척 기뻐하며 갔던 두 분의 EBS 공감 공연에서, 앨범에 들어 있는 곡들을 들으며 그래, 내공이란 이런 건가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새 앨범의 노래를 들으며, 그래도 정리되지 않는 껄끄러움과, 내 앞에서 노래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대한 궁금증과, 혼자서 조금은 결론내렸다고 생각했지만 매번 흔들리는 '종교'에 대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 만큼의 경험을 겪고 이렇게 세상을 인식한다. 그런 생각에 빠진 채로 노래를 듣다가, 이번 앨범의 '꿈'이란 노래의 연주가 시작되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각각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식 세계가, 마치 우주의 은하들처럼 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느낌.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주가, 흔히들 '은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처럼, 어딘가 가볍지만 묵중한 각각의 세계들이 무수히 많은 별들처럼 이 공간과 시간을 부유하는 느낌. 각 개인의 세계는, 아니 그 개인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서로 다른 모습으로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떠돌다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멀어져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도 살아가고, 당신이 살아가고, 하루만큼의 시간이 또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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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후유소요 2009/06/29 01:33 # 답글

    앗, 우연의 일치인가요 ;ㅂ; 저도 김성일씨 소설 읽으며 자랐어요. 제가 읽은 건 홍수 이후.. 라고, 4권짜리였고, 저 책도 집에 있었는데 읽진 않았지요 ㅎ 더 리더는 영화로 보고 울었는데... 꼭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바쁘다고 계속 미루다 보니.;ㅅ;
  • Piano 2009/06/29 13:06 #

    저도 리뷰 쓰려다 미뤄놓은 게 대체 몇 갠지;. 포스팅도 타이밍이구나 OTL 하면서 좌절하고 있다죠 ㅋ
    김성일씨 소설이 참 재밌던데요. 홍수 이후는 읽어보진 않았는데.
  • 2009/06/29 11:4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Piano 2009/06/29 13:07 #

    친한 사람들이랑 놀러다녀왔거든요 ㅋ
  • 2009/07/03 18:06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9/07/07 12:54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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