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졸업했다 by Piano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양원주부학교 졸업식.
2009. 02. 24



학교에 다니던 시절, 가족에 대한 것을 조사하던 서류에는 꼭 부모의 '학력'을 쓰는 곳이 들어있었다. 그 때마다 잠시 고민하곤 했다. 엄마, 이거 뭐라고 써? 하고 여쭤보면, 엄마의 표정 역시 곤혹스러웠다. 엄마의 잘못도 아닌데. 엄마는 단지 7남매의 장녀이셨던 것 뿐이고, 공부를 잘 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셨던 것 뿐이었다. 굳이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민망해하셨고 나는 괜히 멋적어하다가 아니 왜 맨날 이런 걸 적어내라는거야? 라며 성질을 내곤 했다. 매년 반복되던 일.

그러다, 엄마가 공부를 시작하셨다. 2002년이었다.


2002년 당시 엄마의 단어장.


딸내미 둘이 다 대학간다는 이유로 홀연히(!) 집을 떠 버린 2001년에 엄마는 무척이나 우울해하셨다고 했다. 무심한 둘째딸은 그저 대학 생활, 그리고 집에서 벗어났다는 자유감으로 마구 달리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2002년 어느날, 우연히 티비에서 주부학교 이야기를 보시고선, 전화로 "엄마 학교 다닐라고." 하시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 때, 공부하는 것이 너무 좋다며 너무 즐거워하시던, 한 학기에 한두번 집에 올까 말까 한 딸내미에게 올라올 때마다 공부 좀 봐주지 맨날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며 눈을 흘기시던 모습도. 뒤늦게 시작한 영어 공부가 너무 어렵다며, 이건 어떻게 읽는거야? 하고 일일이 물어 한글로 발음을 적어두셨던 단어장, 그 단어장 볼 때마다 마음이 울컥 해서, 공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일곤 했다.

그렇지만 2학기쯤에 엄마가 다른 일을 시작하시면서 공부를 중간에 포기하셨더랬다. 극구 반대했으나, '돈'은 내가 인식하던 것보다 생활에 더 치명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엄마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셨던 것이 작년이다. 그러니까 한 5년 정도만이려나. 엄마 가게가 들어 있는 상가가 리모델링을 하기로 결정이 되면서 장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때다 하셨던듯. 엄마가 학교를 다시 다닐 생각으로 행복해하시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그리고 나름 호방하게, 엄마 등록금은 내가 댈게! 하고 외칠 수 있는 위치가 된 것도 뿌듯했고. 그렇게 기분좋게 시작은 했으나 뭐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엄마 학교 다니면 내가 과외해줄게!라는 다짐은 저리로, 다른 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책을 들고 오시기라도 하면 성질을 내기도 하고, 한꺼번에 단어의 발음을 서른 개씩 물어보시면 엄마, 발음은 몰라도 돼!(!)라는 어이없는 망발을 일삼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일들을 겪고, 엄마가 시험이 있을 때는 “엄마, 공부 안하고 티비 봐?”같은 구박을 날리며, 엄마 우리 중고등학교때 엄마가 했던 말들의 복수다! 같은 대사를 날리기도 했다. 전에 처음 시작할 때와 다르다며, 아무리 공부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좌절하시기도 하고, 학교에 귤이며 고구마를 싸 가셔서 짝꿍 분과 나눠드시고, 학교 선생님께 칭찬받았다며 자랑을 하시기도 하고. 아우 숙제가 너무 많아~ 하며 투정도 부리시고. 내가 출근하는 길, 엄마가 같이 등교하시면 사당역까지 걸어가는 길에 듣는 엄마의 학교 이야기가, 나의 중고등학교시절만큼이나 설레고 풋풋해보였다. 그런 시간을 지나, 1년이 되어서. 엄마가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되신 것.

졸업식날 아침, 미용실에 간다 한복을 입는다 정신없으신 엄마. 여전히 무심한 둘째딸내미는 아무 생각없이 출근 준비를 하다가, 언니의 한 마디에 덜컥 찔리고 말았다. 넌 휴가 쓸 수 있으니까 엄마 졸업식 가서 사진 좀 찍지? 그러고 보니 맞네. 몇 주 전부터 아빠가 엄마 졸업식에 사진 찍으러 가실 거라고 하신 거 다 들었으면서 왜 내가 갈 생각은 못했던 걸까. 잠시 고민하다가 회사에 전화를 해 놓고, 미용실 다녀오셔서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으신 엄마와, 똥배는 어쩔 수 없지만서도(!) 멋지게 콤비 자켓을 꺼내 입으신 아빠와 함께 집을 나섰다. 이런 날 택시 타는 거라며 택시를 한참 기다려 탔는데, 용산에서 시위가 있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차가 밀렸다. 지하철 두 정류장만큼의 거리를 가는데 7000원. 조마조마한 마음을 붙잡고는 기다렸는데, 겨우 졸업식 시작 전에 도착했다. 엄마 먼저 들어가시라 하고, 아빠와 함께 프리지아 꽃다발을 구입. 졸업식 장소는 마포문화회관이었다.

졸업식장은 사람이 많아 북적거렸다. 학사복을 입으신 분들도 있고, 한복을 차려 입으신 분들도 많고. 상을 받지 않거나 더 이상 진학을 하지 않는 분들은 평범한 옷을 입고 그냥 참석하신 듯 보였다. 중간 중간 할머니~~!!를 외치며 울어제끼는 꼬마들, 멋지게 차려 입은 20대쯤의 아가씨도 있고 DSLR을 꺼내든 남자분들도 제법 보인다. 아무래도 사연이 많은 곳이니 여기 저기 사진기자님들도많이 와 계시고. 귀빈들도 많이 와 계셨는데, 인사와 시상을 마치면 다 중간에 나가시는 통에 좀 정신이 없기도 했다. 엄마가 상을 받으실 때 아빠가 무대까지 진출(!)하셔서는 꽃다발 전달. 무대 아래에서 찍사 딸내미는 열심히 찰칵찰칵. 두루마기까지 곱게 차려 입으신 엄마는 돋보였다. 과연 한복집 하시는 분 답다. :). 연이은 시상식. 솔직히 구경하는 쪽에선 좀 지루하긴 했다. 상 받으시는 분이 한두분이어야...;;;. 그리고 교장 선생님 말씀이 이어지고, 졸업사가 이어졌다.

어느 졸업식이 사연이 없겠느냐 싶지만서도 이 졸업식에선, 앞에 앉아계신 어른들의 머리 위로 무지개색 구름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그 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학교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었던 그 상황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이 어땠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실 때의 결심이 어땠는지, 학교에 다니면서 또 어떤 느낌이셨는지 내가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한 분 한 분이 각양 각색의 구름을 품고 그 자리에 계신 것처럼 보였다. 졸업식이 끝나고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가족들과 함께 나오시는 고운 한복 차림의 아주머니들. 어머니를 똑 닮은 아가씨가, 예쁘게 차려 입고는 엄마 사진 찍어줄게 여기 서봐 ~ 하는 모습도, 한복 위에 고운 숄을 걸치고 가족들과 함께 나오는 아주머니, 오늘따라 예쁘게 입으신 할머니 품에 안겨 마냥 좋아하는 아기들. 그러니까, 아마도 그 시절엔, 학교에 갈 수 없었던 그 때에는 세상을 원망하기도 하고 혼자 울기도 하고 그러셨겠지만, 엄마의 일기장에서 봤던 것처럼, 공장에서 일하며 밤마다 베갯잇을 눈물로 적셨을지 모르겠지만. 졸업식에서의 모습들은 정말 모두들 너무 행복해 보이셨다. 그 때보다는 여유 있고, 그 때보다는 살 만한 지금. 그리고 늦은 나이에도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을 해결하러 달려들고, 그리고 그 과정을 마치신 분들. 그 표정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십대 중고생들 저리가라 싶은 순수한 얼굴들. 언니, 이리와~! 하며 사람들을 모아 사진을 찍으시고, 꺄아 소리를 지르시기도 하고, 우리 같이 밥 먹고 가자며 막 모이시기도 하고. 나도 엄마와 같은 반이신 아주머니들께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그 사이에서 나도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늘 졸업식에 나오는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졸업은 끝이 아니다. 그건 울 엄마께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엄마가 다니신 학교는 정식으로 학력 인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보셔야 한다. 작년에 한 번 보셨는데, 과학 답안지를 밀려(!)쓰신 모양이다. 밀려 쓰지않았으면 (턱걸이로) 통과할 수 있었는데, 라며 얼마나 아쉬워하시는지. 그래도 이번에 세 과목만 보면 되니까, 라고 좋아하시는데, 그래서 그 세 과목이 뭔데? 하고 물었더니 영어, 수학, 과학이란다. 엄마. -_- 제일 어려운 것들만 남았잖아! 게다가, 중학교 과정을 졸업하신 터라 고등학교 과정에도 입학하신다. 입학식은 3월 5일. 엄마는 그저 즐거우신 표정인데 나는 왠지 정신이 없다. 하긴, 내가 걱정할 이유가 뭐 있나. 엄마가 우리 공부하던 때처럼 (!) 점수를 잘 얻어서 1등하려고 하시는 것도 아닌데. 그저, 엄마가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셨던 서러움을 풀고,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시는 것만 해도 그저 좋으니. 그래도 검정고시는 우수한 성적으로 패스하셨으면 좋겠다 싶지만, 뭐 과외할 자신은 없는 무심한 딸내미는 그저 마음 속으로만 바랄 뿐. 그러니까, 엄마의 즐거운 학교 생활이 쭉 즐거웠으면 하는 바람. 엄마가 부끄러워하시던 것들을 극복하시고 그만큼 당당하고, 그만큼 더 행복해지셨으면 하는 마음. 엄마, 올해도 학비는 내가 낼게요. 그러니까 이번 졸업식을 딛고, 앞으로도 쭈욱. 그렇게 행복하게.

2009년 2월 24일, 그렇게 행복한 기억을 안고,

엄마가 졸업했다.



덧글

  • 간달프 2009/03/02 23:49 # 답글

    오오 축하드립니타!
  • Piano 2009/03/03 00:02 #

    아핫, 고맙습니다 ^^.
  • 술취한고양이군 2009/03/03 00:03 # 답글

    어머님 멋쟁이!!!
  • Piano 2009/03/03 00:30 #

    꺄아아 >ㅂ< 엄마가 좀 멋쟁이시죠! (쿨럭)
    여튼 술고님, 고맙습니다!
  • 후유소요 2009/03/03 00:21 # 답글

    어머님 멋쨍이!! >_< 아, 정말 축하드려요 'ㅁ'*
  • Piano 2009/03/03 00:31 #

    후유소요님 고마워요 ^^* 히힛.
  • 정여사 2009/03/03 09:22 # 답글

    제가 생각한 그 분이 맞다면... 무척 닮으셨군요 ^^
  • Piano 2009/03/03 11:24 #

    앗... 들켰군요. ( --); 아무도 모르겠지- 그랬는데.
    근데 안 닮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걸요 ( --); 헤헷.
  • 사이동생 2009/03/04 10:30 # 답글

    멋진 어머님이시네요. 축하드려요.
  • Piano 2009/03/04 12:15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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