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후기 by Piano

자다가 깼다. 지금 여기는 성환 이모네집. 어제 마신 소주때문에 목이 말라 일어났더니 도통 잠이 오지 않는다.

엄마가 이모네 가서 김장을 할 거라고 하실 때만 해도 별로 올 생각은 없었다. 나 안갈테니 엄마 다녀오셔 라고 말했지. 괜히 심부름하고 일해야 할 건수에 말려들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토요일, 느지막히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놀다보니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다. 고생할 엄마 생각이기도 했고, 엄마의 손맛을 볼 수 있는 기회란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얼마나 더 엄마와 김치담그며 왁자지껄 떠들수 있을까, 엄마가 즉석에서 장갑낀 손으로 말아주시는 갓 무친 김치를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싶은 그런 것. 그래서 슬쩍 아닌척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던 것이고, 뒤늦게나마 김장 대열에 합류했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천안행 급행열차를 타니 한시간 정도 걸렸고, 성환 역전서 20분이나 기다려 버스를 타고 이모네 집에 도착하니 시간은 거의 아홉시를 향해 달려가고, 김장은 버무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 하는 작은 이모를 대신해서 고무장갑을 끼고 버무리는 대열 합류. 생각보다 허리도 아프고 옷소매엔 고춧가루가 잔뜩 묻었다. 누가 초짜 아니랠까봐;;. 여튼 마무리를 대강 하고선 이모부와 아빠와 함께 겉절이, 돼지고기, 낙지와 함께 소주 일 잔. 이모부가 준비해 놓으신 소주는 무려 뚜껑에 빨간 두꺼비가 그려진, 진로소주였다. 우엥;;

한 잔 한 잔 마시다 보니 어릴때 이야기도 나오고 ㅋ 즐거웠다. 이모와 이모부가 갓 결혼하셨을 시절, 그러니까 내가 여덟살;;이었을 때 얘기며 (그때 현진이가 쪼끄매가지고는 언니랑 놀이터에서 놀고있었지∼ 그때만 해도 이렇게 키가 커버릴 줄은 몰랐는데 말야∼) 이모부 회사 얘기 등등. 한 잔 한 잔 술이 비어갈수록 이모부는 이 조카가 마음에 드셨나보다. 현진이는 이렇게 어른들이랑 술도 한 잔 할 줄도 알고, 잘 웃어서 참 좋아. 옆에서 연신 잔을 비워대시는 아빠 말리느라, 그러면서도 막 담은 김치와 돼지고기에 술 홀짝거리느라 바빴던 나는 그저 웃었다. 그러고보니 이렇게 이모부랑 술 한 잔 했던 것도 오랜만이구나. 얼추 진도 맞춰 가며 홀짝거렸더니 아빠랑 이모부랑 함께 비운 술이 세;; 병. 25도짜리 빨간 두꺼비 진로소주를 한 병쯤이나 마신거다;. 어른들은 벌써 얼굴 불콰하시고, 아빠는 너 술 그만 마시라며 안달이시고 (아빠는 나한테 그런 말씀 하실 때가 아님! 아빠가 그만 드셔야지!) 나도 흔하지 않게 얼굴이 살짝 발그레해졌다. 마구 떠들며 왁자지껄 술자리까지 끝나고나니 열두시더라. 아침 일찍 이모부가 집에 태워다 주시기로 했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었다.

빨간 뚜껑 진로소주를 근 한 병이나 비워서인지 목은 타고 ㅜ 머리도 살짝 아프고. 물 마시러 가려고 잠시 일어났더니 잠은 어디론가 달아나버렸다. 더 자야 오늘 덜 괴로울텐데ㅠㅠ 우짜지. 이상 김장후기를 빙자한 음주후기 끝.

덧글

  • crm 2008/11/23 18:03 # 삭제 답글

    과연 드렁큰보대, 김장도 음주가 된다 (..)
  • Piano 2008/11/23 19:26 #

    .... 설마 나만 김장 하면 술 마시는 건 아닐거야 막 이카고 -_-;;;

  • 술독에빠진고양이 2008/11/24 15:49 # 답글

    ..............이번 주 금요일 무채썰기를 시작하여.... 토요일까지 김장모드 예약입니다;;;

    작년보다 왠지 더 힘들꺼 같은 기분이 드네요;;; 애구애구;;;;
    올해는 삼겹살이 좋은거 사다가 된장이랑 파랑 양파랑 슝슝 넣어서 수육한판 해야겠어요.
    작년엔 그냥 넘어갔더니 찜찜해서 ㅋㅋㅋ
  • Piano 2008/11/24 17:32 #

    저는 어제도 김장 했더니 허리아프다능 ㅠㅠ
    고생하셔요! 요새 골목길 다니다 보면 집 문을 넘어 흐르는 김장냄새에 ㅋㅋ 왠지 즐겁다능~
    수육 또 먹고싶다 츄릅 -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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