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없는, 최근의 정국들에 대한 생각들. by Piano

키보드를 앞에 놓고 한참을 망설인다. 참고 참은 말들이 토하기 직전까지 밀려왔는데, 무엇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 휩쓸려 가는 인생. 토해내지 못한 말들이 신음처럼 핏줄을 떠돈다.

촛불의 물결 속에서 생각했다. 분명히 난 역사 속에 있구나. 회사에서 주식이며 재테크 이야기를 하고, 친한 친구녀석들과 커피를 마시고, 밤에 야식으로 치킨 시켜 먹으며 다이어트 스트레스에 좌절하던 나와,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내가 함께 존재한다는 거, 그거 참 낯선 일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일어섰고, 나의 '지금'이 역사가 되는 순간을 체험하고 나니 뭐랄까, 나는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는 조그만 개구리밥같은 존재인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았건만 나는 그 자리에 섰고, 사람들과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 그 '흐름'인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 하나하나가 궁금하다. 실은 가장 궁금한 건 파란 지붕 아래에 있을 그 분의 뇌속이지만, 촛불을 든 수많은 사람들 역시 대체 무슨 생각일까,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왜 그 집회에 나왔는지가 궁금했다. 단순히 광우병쇠고기 때문은 아닌 듯 한데. 아니, 그런 걸 생각하기 전에 나는 왜 그 곳에 나갔는가. 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가.

단순히 광우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위험한 병인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그 위험에 노출된 것도 사실이되 그 병에 걸릴 확률이 굉장히 작은 것도 사실이다. 치사율 100%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차피 사람은 죽잖아- 라고 시니컬한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고. (물론 죽으려면 곱게 죽어야지, 미쳐서 죽으면 안되지 라고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 ). 그런데 처음으로 나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협상 그따위로 해놓고 미국 소 홍보하고 다니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쪽이 어느 쪽인지 구분을 하지 못하는 정부였다. '정부'라면 국민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1ppm  이라 하더라도, 그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므로. 그리고 촛불집회가 시작되면서는, '국민'의 뜻을 길거리 껌딱지만도 못하게 여기는 정부가 짜증나기 시작했다. 이명박씨가 당선될 때부터, 앞으로는 거리에 나설 일이 많겠구나 라고 이미 짐작은 하였으나, 그 '정책' 이외의 문제로, 그러니까 지금처럼 '소통'의 문제로 길거리에 나서게 될 줄은 몰랐더랬다. 그러니까, 이명박씨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답답하고 대책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광우병만으로 그 자리에 나왔는가. 미국 소 재협상 해서 30개월 미만 소만 수입한다고 하면 저 중의 얼마만큼이 제자리로 돌아갈까. 며칠 전 퇴근길에 들은 라디오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관련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80%, 그와 동시에 한미FTA가 비준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80%.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재협상을 해서, 위생 조건에 대해 전면적인 수정을 한다고 하면 그게 이번 촛불집회의 성공인가. 이번 6월 10일, 여튼 대강 50만 정도의 국민이 나와서 광화문을 휩쓸고 다니며 의견을 표출한 것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역사에 있어 커다란 사건인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지금 봐서 이명박정부는 어떻게든 눈가리고 아웅하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집회에 참석할때마다 느끼는 '배후없음'에 대한 생각들도 있다. 정말 시니컬하게, 이렇게 '이합집산'이 계속되는 걸 보아서도 이 집회에 '배후는 없다'. 이렇게 느슨한 형태의 네트워크가 강력하게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집단행동'이 갖는 의미/그리고 앞으로의 효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현충일에 같이 집회에 참석하셨던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나도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조직된 '배후없음'은 배후가 없음 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공동책임'이 되면서, 인터넷 공간의 특성상 책임 소재를 분명히 물을 수 없는 체계가 되어버린다. 집회에서 종종 일어나는 전경차낙서/전경차끌어내기 같은 것, 여튼 어떻게든 생각하면 이건 '국가 재산의 훼손'인데. 그런 행동으로 얻어낼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가 역시 굉장히 큰 문제이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가 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 , 민노당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중에 기억에 남는 단어가 '생활정치'였었다. 정치라는 것이 일상과는 괴리되어 있고, 저기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란 생각이 광우병을 계기로 해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대운하며 수도사유화, 의료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등. 실제로 정치의 결과가 대중의 '일상'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 시작할 때 진정한 '생활정치'가 시작되는 거고, 그런 부분에서 '정당'이 힘을 얻어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이번 촛불집회가 그렇게 '생활정치'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할텐데.

어제 까페에서 송기호 변호사 강연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광우병 쇠고기는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대운하뿐만 아니라 수도사유화 의료보험 문제 등등이 한미FTA랑 맞물려서 다 돌아가게 될텐데. 기본적인 현실 인식은, 이제 미국식 통상질서의 확대가 가져오는 부는 국민 개개인의 부로 돌아가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나도 그 부분에 동의하고. 어쨌거나 지금의 자본주의는, 특히 우리나라처럼 반도체나 자동차같은 물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는 통상의 확대가 '주주와 재벌'의 이익에는 확실하게 기여하겠지만, 국민 개개인의 부를 늘려주는 데에는 그렇게 크게 기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쇠고기 문제, GMO 문제, 등등 먹을거리/건강과 관련된 것까지 그런 '통상'의 범위 안에 들어가면 국민의 자기결정권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고. 이번 촛불집회에서 지쳐 나가떨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런 것들이다. 앞으로 싸워야 할 것이 워낙에 많으므로.

최근에 계속 이해 와 동조 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말하자면, 설득가능성 에 대한 이야긴데. 엄밀히 말하자면, '당위성' 즉 '전제'가 다르다면 어차피 설득은 불가능하다. 당위성은 '믿음'의 영역이다. 그것은 논리로 전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다. 믿음을 깨뜨릴 수 있을만큼의 근거는 정말 큰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여태까지 창조론vs. 진화론 논쟁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창조론을 계속 밀어붙이는 것만 봐도, 믿음이란 '설득의 가능성을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튼, 그렇지만, 내가 설령 설득당하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러니까 '역지사지'는 언제나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최대한 열린 귀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의견에 '동조'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어제 노무현씨를 엄청 싫어하시는 몇 분과 이야기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노무현씨에 대해서, 약간 양비론-_-적인 평가를 가지고 있다.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나쁜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게다가 대조군이 '이명박'이라면, 차라리 노무현을 돌려줘 라고 외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제 송기호 변호사님 말씀에도 동의했던 것이, 노무현씨가 한미 FTA를 진행하는 것을 보았을 때 부적절한 부분이 많았지만, 이명박씨는 '적절한 부분이 없다' 라고. ) 그런데 까페에서 노무현씨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겉으로는 진보인척 하면서 알고보면 신자유주의 정책은 몽땅 가져다놓은 배신자이므로 싫다 는 것이다. 그러니까. 비유를 해보자면, 정말 믿었는데 사기를 친 친구놈과, 정말 대놓고 다 훔쳐가는 도둑놈이 있다면 어느쪽이 더 나쁜가/ 어느쪽이 더 싫은가 에 대한 문제인 거다. 그래서, 어쨌든 노무현씨에 대해 정말 싫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에 대해, 그런 부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이 '싫다/좋다'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노무현씨를 그 사람들처럼 '싫어하게' 되느냐와는 다른 문제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냐면. 소수자 운동에서, 그 소수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도우려고 하는 것과 내가 '소수자'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니겠느냐 하는 거다.

내 입장이 이렇기 때문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독선적인' 사람, 그러니까 딱 2MB, 귀가 완전히 닫혀 있는 사람인데. 이명박씨가 정말 무서운 것은, 그 '믿음'의 영역에 자신이 '잘 하고 있다' '잘 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섭다. 어차피 믿음의 영역은 설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저 사람을 끌어내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설령 끌어내린다고 해서 그 다음에 무엇이 어떻게 되겠는가, 라고 한다면. 적어도 저만큼 믿음이 확고한 '꼴통'이 아니라면, 어느정도 말은 통할 것이므로. 적어도 '말이라도' 통해야 뭐라고 떠들어보기라도 할 것 아닌가.

촛불집회에 나가서도, 전경차를 끌어내고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스 괴담과 스티로폼의 출처, 컨테이너를 넘느냐 마느냐, 진정한 비폭력은 저항을 수반해야 한다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고가는 와중에. 나는 어쨌거나 저 사람들이 선을 쳐 준 안에서 논다면, 아니 그러니까 어차피 청와대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굳이 '월담'이 아니라 서울 시내로 '퍼지는' 방법이 훨씬 대중의 지지를 얻기에도, 실질적인 효과로도 나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장기전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대중의 피로도가 좀 더 커질 수는 있겠으나. 강남에서도 집회하고 (강남이면 가까워서 신날듯-?) 서울 여기저기로 퍼지는 방법도 필요할 듯 싶고. 지금처럼 '밤'에 하는 집회가 아니라 '낮'에 하는 행동이 필요하고. 뭐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더랬다. 모 분께서는, 컨테이너를 넘어서 그 자리에서 '연좌시위'를 하는 것도 역시 비폭력 아니겠느냐 라는 말씀을 하셨고, 지금 전경차에 다가가기만 해도 경끼를 일으킬(것 같은) 비폭력 분위기에 대해서. 정말 이 '비폭력'으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겠는가 하는 것은 .... 여튼 어려운 문제다. 정말, 가장 슬픈 시나리오는, 이러다 유야무야되는 것이고. 그거보다 방향은 희망적이나 슬프기는 마찬가지인 시나리오는, 얼마 전의 그 괴담처럼, 어쩌다 보니 '희생'되는 사람이(시위대)가 생기는 경우다. 물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어쨌든 재협상 하고, 인적쇄신 다 하고, 이명박씨가 개과천선-_-하는 경우겠으나. 이건 정말 어렵지 않을까. 휴. 앞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질지, 대한민국이 어떤 활극의 장이 될지. 아직 전혀 짐작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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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다비 2008/06/15 14:57 # 답글

    요즘은 청와대 버리고 여의도로 가고 있죠. ^^
    17, 18일에 강남 시위가 있답니다. 코엑스 앞이예요.
  • Piano 2008/06/15 17:50 #

    네에 ^^ 여의도 가는 거 보고 이제 서울 전역이다! 그러고 있습니다.
    코엑스 앞에서 한다고 해서 언제 하는건가 - 그러고 궁금해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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