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퀴리 가문 -  데니스 브라이언 지음, 전대호 옮김/지식의숲(넥서스) |
어릴 때, 집에 책이 참 없었다. 다른 집에 놀러가면 다들 한 질씩은 꽂혀 있던 전집류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던 시절에 부모님께서 어디선가 위인전 전집의 일부를 주워오셨다. 맞춤법은 좀 틀렸지만 (개정 전의 맞춤법으로 쓰인 책 - '~~~읍니다' 가 나오던) 그 책을 보고 또 보고 읽고 또 읽고 하던 날들의 기억. 대략 열댓권 정도였던 것 같은데, 거의 그림까지 기억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파스퇴르, 퀴리부인, 리빙스턴, 링컨, 베토벤 정도인가. 그 중에 과연 역시 최고는 퀴리부인이었다. 어느 부분에 어떤 삽화가 들어있었는지 다 기억할 정도였으니.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습지만, 적어도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선망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실은 아직도 그 생각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간만에 들렀던 길담서원에서 저 책을 집어든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일차적으로는 퀴리 부인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대학교 들어간 다음 무언가 찾아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가문'을 다루었다는 것이 무척 궁금했다. 피에르 퀴리에 대해서도 조금 더 알고 싶었고, 단순히 아 딸도 노벨상을 받았대 (!) 정도만 알고 있었던 이렌 퀴리 - 프레데릭 졸리오 부부에 대해서도 궁금했고. 그래서 집어들긴 했으나 두께의 압박으로(!) 집어든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읽고 나서의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 과학의 격변기 그리고 세계사의 격변기에 사는 사람의 삶을, 아예 '가문'의 이름을 달고 주욱 훑어볼 수 있다는 건 이 책 최대의 매력이다. 어떤 시기에 어떤 사람들과 동시대에 있었고, 어떤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토론을 하였는지, 그 당시의 실험 장비는 대체로 어떤 구성이었는지(!), 당시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던 실험결과를 해석하기 위해 내놓은 발견들의 두근거림, (기존의 지식을 깨고 한 걸음 내딛는 기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토론에 의한 상호작용들 같은 것. 1차 세계대전을 살아가는 개인의 자세, 2차 세계대전에 대응한 자세, 정치적 성향, 개인적 사건들. 특히, 과학사에서 진보가 이루어지는 순간을 목도하는 건 참 질투나는 일이다. -___-
-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마리 를 만나기 전 피에르 퀴리의 연구 분야 및 성과들에 대해서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생각보다 실험의 구성이나 장비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흡족했고 (생각보다 간단해보이는 장비들 - 구름상자(!) - 같은 것), 발견이 가져왔던 토론이나 그 상호작용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논의들에 대해 읽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 어린이용 위인전에 전혀 나오지 않는 이야기로는 폴 랑주뱅과의 스캔들이 있겠는데. 전에 읽다 실패했던 퀴리 부인 평전 원서;의 머릿말에서 처음 그런 일이 있었어? 라고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러면서 이번에 읽으면서 이런 저런 내용들을 알게 되었는데. .. 다른 것보다 '악의적인 언론(여론)의 무서움'을 제일 크게 느꼈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접근해서 사기를 친 것이 아닌 이상에야 개인의 애정사는 사적인 영역인데. 역시, 여성의 위치가 지금(이라고 아주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보다 많이 낮았던 시절의 선구자는 이래 저래 적이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 물론 인물도 인물(;;)이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에게는, 언론과 소문 그리고 편견의 잔인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 프레데릭 졸리오 라는 인물을 잘 모르다가 이번에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굉장히 멋진 인물이었구나 싶다. 특히 2차세계대전 즈음의 활동에 대해서는, 정치적 성향 및 방향에서 이브 퀴리와 차이가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생각할 여지가 굉장히 많았다. 전쟁, 지켜야 할 가치 및 지향점 같은 것. 같은 이슈를 놓고 대조적으로 나타나는 부분들이 있었다. 졸리오는 공산당원이었고, 이브 퀴리는 우파적인 성향이었고. 개인 성향 차이인지 모르겠으나 이브 퀴리의 취재 이야기에서는 뭐랄까 거부감이 좀 생겼는데. 유럽중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거부감이었던 듯. 특히 간디와의 인터뷰에서 제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좀 많이 그랬다. 졸리오의 말년 냉전 체제와 관련된 권력싸움 (원전 이야기와 관련해서), 이브 퀴리의 취재 이야기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정치성향 등은 2차세계대전과 관련해서 좀 더 읽어보아도 좋을 듯 싶어졌다.
- 보통 '위인전'은 대상을 '우상화'시키는 데에 반해, 어른이 되어 읽게 되는 평전은 결국 이 사람도 '사람으로'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감정도 있고 실수도 있으며, 마치 그냥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모습들을 알게 되는 건 새삼스럽게도 다행스러운 기분이다. 그기에다 이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접촉하며 살았는지 보는 것은 늘 '역사 속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것을 관찰하는 기분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사람들이 살아간 현재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를 보는 과정이겠지만 말이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그래서 완전히 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나 역시 하루 하루를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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